등굣길, 투명 방음벽 아래에 작은 새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 얼마 뒤에는 목에 비닐을 두른 비둘기가 가로등 위로 날아올랐다. 두 아이의 엄마는 그 앞에서 걸음을 멈췄고, 며칠 뒤 집게와 봉투를 챙겨 아이들과 강변으로 나섰다. 『플라스틱을 녹이는 씨앗 하나』는 평범한 엄마가 3년 동안 쓰레기를 주우며 환경교육사가 되기까지, 그 길 위에서 건져 올린 51편의 이야기다.
이 책의 출발점은 거창한 사명감이 아니다. 놀이터 위를 나풀거리는 흰 비닐, 가로수 풀숲에 걸린 커피 캔, 흡연 금지 구역 바닥에 흩어진 담배꽁초처럼 어제까지 보이지 않던 것이 어느 날 눈에 걸리기 시작한 경험이다. 저자는 이 변화를 라섹 수술 뒤 뿌옇던 시야가 서서히 또렷해지는 일에 빗댄다. 한번 보이기 시작한 것은 모른 척하기가 더 어렵다.
책 속 풍경은 우리 집 거실과 다르지 않다. 에어컨 온도를 두고 벌어지는 남편과의 논쟁, 싱크대 위에 나란히 놓인 액체 세제와 설거지바, 캐릭터 도시락을 부러워하는 아이에게 건넨 냉장고 파먹기 볶음밥, 다섯 살 아이가 김치통을 들고 앞장선 첫 ‘용기내’ 도전까지. 환경을 지키는 일이 특별한 사람의 결심이 아니라 한 가족의 평범한 하루에서 어떻게 자라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 준다.
이 책이 말하는 것
환경을 지키는 일은 결국 나를 지키는 일이다. 저자는 쉽게 쓰이고 가차 없이 버려지는 플라스틱 컵에서, 카페인과 약으로 버티며 제 몸을 소모품처럼 굴려 온 자신을 발견한다.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를 씻는 아침은 ‘나는 한 번 쓰고 버려질 존재가 아니다’라고 스스로에게 말해 주는 시간이 되고, 배달 음식 대신 차린 투박한 집밥은 내 몸을 귀하게 대접하는 저녁이 된다. 이 책에서 환경은 희생의 대상이 아니라 회복의 방법이다.
그래서 이 책은 죄책감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 정도 해서 뭐가 달라져?”라는 냉소 앞에서 스스로를 몰아세우다 가족과 부딪치고 지쳐 버린 시간, 완벽주의를 내려놓기까지의 흔들림을 숨기지 않는다. 오늘의 선택이 100점이 아니어도 괜찮고, 내일 다시 방향을 물으면 된다는 것. 저자가 건네는 것은 훈계가 아니라 곁에서 함께 걷자는 제안이다.
읽고 나면, 오늘 당장 해 볼 것이 생긴다 51편마다 붙은 「정만이의 실천 노트」는 이 책의 실용적인 뼈대다. 텀블러와 전자영수증으로 쌓는 탄소중립 포인트, 남은 약을 제대로 버리는 법, 투명 페트병 분리배출, 다회용기를 내미는 ‘용기내’ 실천, 천연 수세미와 설거지바까지 오늘 바로 해 볼 수 있는 방법을 저자의 경험과 함께 담았다. 부록에는 함께 볼 다큐멘터리와 환경 그림책, 지역별 환경교육 체험 기관, 병뚜껑 놀이와 환경 기념일 워크지, 네모 수세미 만들기까지 실어 가정과 교실에서 곧장 활용할 수 있게 했다.
“지구를 지키는 일인 줄 알았습니다. 알고 보니, 나를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이런 분께 추천합니다
환경을 지키고 싶지만 어디부터 할지 막막한 분 / 아이와 함께할 생활 속 환경 실천을 찾는 부모 / 기후 뉴스 앞에서 불안을 느끼는 분 / 바쁘다는 이유로 자신을 소모품으로 대해 온 분 / 환경교육을 준비하는 교사·강사
목차
프롤로그 목이 비닐에 감긴 비둘기를 만나다9
1부 바람에 실려 온 작은 씨앗 하나 1. 왜 지켜야 하지?14 2. 집 나간 고양이를 4년 만에 만나다18 3. 쓰레기만 보이는 눈이 되었다24 4. 아이들이 살아갈 내일은 괜찮을까28 5. 같이 하면 좋겠다32 6.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옷장36 7. 환경은 내 공감의 문제였다39
2부 캄캄한 흙 속에서 가장 먼저 뿌리를 돌보는 시간 8. 고양이가 죽었다44 9. 내 몸이라는 지구에 켜진 붉은 경고등49 10. 본질에 집중하는 감사53 11. 나도 모르게 꺼져 있었다58 12. 괜히 서글퍼지는 날64 13. 후회하기에는 아까운 시간, 유턴할래? 우회전할래?68 14. 나는 일회용으로 살지 않기로 했다71
3부 단단한 땅을 뚫고 나온 초록빛 일상 15. 우리 집밥 먹자76 16. 플라스틱을 좀 멀리하자80 17. 반대인 사람83 18. 에어컨 논쟁87 19. 지구를 지키는 엄마표 냉장고 파먹기 도시락91 20. 얼굴색이 좋아졌다94 21. 퐁퐁과 설거지바의 공존96
4부 우리의 발걸음은 무성한 잎사귀가 되어 22. 물병과 텀블러의 힘102 23. 플로깅 3년 차107 24. 화분 키우기112 25. 설거지바116 26. 수세미 사랑해122 27. 용기내다126 28. 마른 수도꼭지130 29. 기후 피디를 만나다134 30. 투명 페트병으로 돈 버는 법138 31. 버려진 청바지의 두 번째 인생142 32. 백로가 뱉은 검은 물고기146 33. 물티슈의 정체를 아시나요?149 34. 헌 옷의 여정152 35. 다들 여기 있었구나156 36. 물고기가 안 잡히는 이유161 37. 엄마 난 마스크가 더 편해166
5부 멈추지 않는 마음은 기어이 꽃을 피울 테니까 38. 버려진 이야기, 다시 피어난 그림책172 39. 쓰레기 매립장에 가다177 40. 우리가 모르는 기념일181 41. 기후 위기, 우리가 사는 세상에 울려 퍼지는 경고음184 42. 우리가 버린 분리배출 그 뒤가 궁금하지 않으세요?188 43. 말보다 행동이 오래 남는다193 44. 그냥 지나쳐도 되지만 의견을 낸다195 45. 배우는 사람은 멈추지 않는다198 46. 배워서 남 주자202 47. 기후행동 가족실천단 그날의 기억206 48. 건강한 환경을 꿈꾸며, 건강한 몸으로211 49.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214 50. 세상을 바꾸는 다정한 발걸음, 에코스칼라를 세우다218 51. 나의 내일, 아이들의 내일, 우리의 내일222
부록 참고 영상 및 도서, 환경교육 체험 기관, 업사이클링 교실, 워크지 외225 에필로그 미래에서 본 오늘 - 엄마가 남긴 가장 현실적인 유산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