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수상록(隨想錄)이되, 저자 스스로 '기록(奇錄)'이라 이름 붙인 기이한 기록이다. 하나의 주제로 곧장 나아가는 대신, 그때그때의 생각을 따라가며 흐름을 만들고, 그 흐름 속에서 반복은 반복이 아니라 변주가 된다. 발가락의 통증에서 시작해 오이디푸스의 휴브리스로, 하나은행 달력 속 나무토끼에서 불교의 무주상(無住相)으로, 우울증 환자와 AI의 마지막 대화에서 워즈워스와 메리 셸리의 시구로 ? 사유는 일상의 사소함과 존재의 심연 사이를 거침없이 오간다.
책의 중심에는 저자가 '간(間)'이라 부르는 것이 있다. 나와 나 사이, '나만의 나'와 '나 아닌 나' 사이의 그 틈. 저자는 이 '간'이 인간에게 본래 있으나 너무 가까이 붙어 있어 도리어 잊히기 쉬운 것이라 말한다. 잊혔다고 없는 것이 아니라, 잊힌 줄도 모르게 잊혀 있을 뿐 ? 그러므로 문제는 언제나 상기(想起)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