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히스토리(지구사)’로 새로운 팔레스타인을 만난다! 유럽-중동-아시아를 잇는 현대 세계의 이해.
팔레스타인 문제는 왜 이렇게 복잡해 보일까. 왜 우리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충돌을 볼 때마다 ‘머나먼’ 중동 땅에서 벌어지는 종교 갈등이나 영토 분쟁, 또는 ‘오래된 증오의 연쇄’라는 설명으로 되돌아가는가. 이 책은 바로 그 익숙한 설명 방식부터 다시 묻는다. 즉 팔레스타인 문제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며, 근대 500년의 식민주의와 인종주의, 자본주의와 국가 폭력의 역사가 긴밀하게 얽힌 ‘세계사’적 사건이자 그래서 바로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것.
이 책은 현재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력을 전형적인 ‘집단학살’로 규정하며 그 폭력의 근원을 파헤친다. 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집단학살하는가. 유대인 ‘(민족)청소’가 어떻게 팔레스타인인 ‘청소’로 이어졌는가. 우크라이나 전쟁과 팔레스타인의 역사는 어떻게 연결되고 있을까. 식량을 통한 기아(飢餓) 정책은 어떻게 ‘전쟁 무기’가 되었나. ‘유대인의 나라’를 꿈꾼 시오니즘(시온주의)이 어떻게 역설적으로 유럽의 반(反)유대주의와 결탁해갔는가 등등.
이 책의 저자들은 서로 다른 자리에서 세계를 읽어온 인문학자들이다. 저명한 양심적 지식인이자 아랍 문학 연구자로 국내에도 널리 소개된 오카 마리는 팔레스타인의 목소리를 전 세계에 적극적으로 발신해왔다. 고야마 사토시는 중·동유럽사를 연구하며 유럽의 반유대주의와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통해 팔레스타인을 바라본다. 후지하라 다쓰시는 독일 현대사와 나치즘, 식량·농업의 역사를 연구하며 전쟁과 폭력, 식민주의와 일상의 관계를 탐구해왔다.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기에 세 저자는 팔레스타인을 하나의 관점에 가두지 않는다. 유럽과 중동,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인종주의와 민족주의, 전쟁과 식량이 팔레스타인에서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이 책은 ‘팔레스타인에 관한’ 책인 동시에, 팔레스타인을 통해 ‘우리의 세계’를 다시 읽는 책이다. 특히 저자들은 일반 독자뿐만 아니라 “이제부터 세상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될 청소년들”이 (쉬운 주제는 아니지만) 제대로 마주하고 직면하기를, 그리하여 ‘진정한 세계사’를 새롭게 만나기를 무엇보다 강하게 희망한다고 밝히고 있다.
목차
추천의 글 | 서문 | 한국어판 서문
Ⅰ 우리 모두의 팔레스타인
유럽 문제로서의 팔레스타인 : 가자 지구의 집단학살과 근대 500년의 식민주의
팔레스타인에서 추방된 유대인? | 집단학살이 끝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 하마스의 공격은 탈식민지화를 요구하는 저항 | 이스라엘 정부의 발표를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 집단학살은 어떤 체계를 통해 가능해졌는가 | 인문학으로부터 생각하다 | 가자 지구를 보면서 일본은 자국의 식민주의를 떠올릴 수 있는가 |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안락한 생활을 하는 자 | ‘인종’은 유럽 식민주의가 ‘발명’한 것 | 시오니즘 운동은 반유대주의에 대한 반응 | 국가 유지를 위해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이용하다 | 근대 학문에 내포된 인종주의
역사학자는 무엇을 물어야 하는가 : 독일 현대사 연구자들은 왜 팔레스타인 문제를 경시했는가?
나치즘 연구자는 나치즘을 제대로 직시하지 않는다 | 독일과 이스라엘을 이어주는 ‘배상’ | 두 차례의 역사가 논쟁 | 누구를 위한 ‘기억’인가 | 독일은 과거를 극복한 우등생인가 | “아우슈비츠는 유일무이한 악이다” | 노예제는 끝났는가 | 경제 문제, 노동 문제로서의 나치즘
Ⅱ 작은 역사로부터 생각한다
어느 서점 이야기 :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의 역사를 연결하기
두 전쟁의 연결 | 긴 척도로 문제를 파악하다 | 폴란드 서점 E. 노이슈타인 | 우크라이나-폴란드-이스라엘을 잇는 생애 | 이스라엘을 이끈 동유럽 출신자 | ‘국가(國家) 없는 민족’의 국가(國歌) | 시오니즘 운동은 드레퓌스 사건 이전에 시작되었다 | 민족운동의 모체가 된 지역 | 이주하여 국가를 건설한다는 발상 | 일본도 ‘외부자’가 아니다 | 적(敵)은 제도(制度), 아군은 모든 인간
식탁 위의 폭력 : 독일, 러시아, 이스라엘의 음식과 농업을 통한 폭력
우리 식탁에 존재하는 폭력 | 투기 자금이 초래하는 기아 | 푸틴의 농업 정책은 외교 무기 | 우크라이나의 곡물을 겨냥한 미국과 중국 | 국제곡물도시 오데사 | ‘기아 계획’을 주도한 헤르베르트 바케 | 홀로코스트의 그림자에 가려진 ‘정착과 기아’ | 굶으면 안 되는 사람과 굶어도 되는 사람 | 이스라엘의 음식과 물을 통한 폭력 | 기아는 ‘낮은 관심’에 의한 폭력
Ⅲ 좌담
‘진정한 의미의 세계사’를 배우기 위해
지금의 세계사는 지역사의 집합체일 뿐 | ‘서(West)’란 무엇인가? | 나치즘은 근대 서양적 가치관의 정수 | 음식을 통한 이스라엘의 폭력에 눈감은 것을 반성하다 | 우리의 생활은 여전히 노예제에 의존하고 있다 | 일본사, 서양사, 동양사라는 구분 | 서양사에서 팔레스타인 연구를 한다면 | 폴란드의 마다가스카르 계획 | ‘민족의 비애’를 지닌 폴란드의 대국주의 | 이스라엘 문제가 아니라 팔레스타인 문제 | 이스라엘 폭력의 기원은 동유럽에? | 지금 이스라엘의 방식은 이상하다 | 누르지 말아야 할 버튼 | 핵 시대의 세계사 | ‘반유대주의’라는 번역의 오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