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는 9개월에 걸었고 18개월에 첫 문장을 말했습니다. 그런데 둘째는 16개월이 되어서야 첫걸음을 뗐고, 네 살이 다 되도록 ‘밥’, ‘물’, ‘멍멍’ 같은 단어 몇 개가 전부였습니다. 코로나로 모두가 마스크를 쓰던 시기, 아이는 하루 종일 사람들의 입 모양을 볼 수 없었고, 엄마는 퇴근 후 가방도 내려놓지 못한 채 발달센터를 오갔습니다. 밤마다 검색창을 붙잡을수록 남는 것은 커져 가는 불안뿐이었습니다. 『조금 천천히 자라도 괜찮아』는 인스타그램 ‘주주맘’으로 약 9만 4천 명의 독자와 소통하는 인스타툰 작가 구하라가 말도 걸음도 느린 둘째를 키우며 지나온 시간을 그림과 글로 담은 육아 에세이입니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정말 책상 앞의 연습뿐일까 고민하던 저자는, 광고 협업으로 조금씩 모아 둔 400만 원을 들고 유모차도 장난감도 없이 두 아이와 함께 코타키나발루로 27박 28일 한 달 살기를 떠납니다.
바람이 얼굴에 닿는 것조차 싫어하던 아이가 물속에서 스스로 발장구를 치고, 속도를 무서워하던 아이가 통통배에 오르고, 맹그로브 정글에서 반딧불이가 쏟아지는 밤을 만납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아이는 처음으로 두 단어를 붙여 엄마에게 묻습니다. “엄마, 졸려?”
하지만 이 책은 기적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돌아온 뒤에도 발음은 여전히 서툴렀고, 아이는 또래 놀이에 자주 끼지 못했으며, 예비초등 학원에서는 “지금까지 엄마는 아무것도 안 시키고 뭐 하셨어요?”라는 말까지 들어야 했습니다. 저자는 그 순간들을 숨기지 않고 기록하며, 느린 아이를 키우며 자신을 가장 자주 무너뜨린 것은 아이의 느림보다 엄마 안의 조급함이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말이 늦던 시간에도, 학교에서 헤매던 시간에도 아이는 자기 안에서 조금씩 자라고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치료실을 부정하는 책도, 정답을 알려 주는 책도 아닙니다. 밤마다 검색창 앞에서 혼자 울고 있는 엄마들에게 “당신 혼자만 그런 것이 아니”라고 건네는 위로이자, 세상의 속도 대신 아이의 속도를 믿기로 한 한 엄마의 기록입니다.
목차
프롤로그 괜찮은 척했던 날들 4
Chapter 1 아이의 느림을 처음 마주한 날들
첫째는 빨랐는데, 둘째는 왜 다를까 12 아이의 뇌 속에 켜지지 않은 작은 등불들 16 그날의 선택을 후회했다(1) 19 그날의 선택을 후회했다(2) 23 코로나가 덮친 세상, 마스크 뒤에 숨어버린 아이의 입 27 16개월의 첫걸음 네 살까지 닫힌 입 32
Chapter 2 벼랑 끝에서 비행기에 몸을 싣다
코로나, 우리 가족에게 찾아온 혹독한 겨울 40 돈은 없어도 여행 갈 돈은 만든다 46 치료실 책상 대신 짐을 싸서 떠난 이유 57 한 달 살기의 첫 페이지, 코타키나발루에 입국하던 밤 66 장난감 없이 떠난 코타키나발루 73 엄마 물이 좋아! 81
Chapter 3 자연 속 다양한 경험은 최고의 재활이었다
여행이 아니라 그곳에서 살아보기 90 속도를 무서워하던 아이가 통통배를 처음 타던 날 96 천국 같은 하루 끝에 간 응급실 105 맹그로브 정글에서 반딧불이가 쏟아지던 밤 116 모스크와 수상가옥, 한 가지 기준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삶들 127 더운 나라에서 매일 걸었다 137 27박 28일의 여정이 끝나던 날 148
Chapter 4 아이의 시간은 멈춰 있지 않았다
돌아와도 모든 게 해결된 건 아니었다 160 아이의 말이 어느 날부터 쏟아지기 시작했다 167 말은 느렸지만 글자를 읽는 눈은 빨랐다 171 몸도 조금씩 자기 길을 찾아갔다 177 잘 크고 있다고 믿다가도 나는 또 무너졌다 186 세상이 작게 보여도 너는 작아지지 않기를 195
Chapter 5 느린 아이의 파란만장 초등 입학기
취학통지서를 받다 206 학교라는 세상에 들어가던 날 211 그래도 아이는 첫 사회에 적응해가고 있었다 217
Chapter 6 거북이 엄마가 토끼 같은 세상에게
엄마 나는 내 속도로 자라고 있어요 230 나는 너를 사랑하기 위해 엄마가 되었다 235 거북이 엄마가 토끼 같은 세상에게 241 에필로그 너는 느리게 걷는 아이, 나는 발맞춰 걷는 엄마 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