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쉼표 긴 이음줄

짧은 쉼표 긴 이음줄

최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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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사람은 관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고, 손을 잡고, 안부를 묻고, 기다리는 동안 한 사람의 삶은 다른 사람의 삶과 이어진다. 그러나 관계는 언제나 온전하지 않다. 마음은 자주 어긋나고, 말은 제때 닿지 않으며, 가까운 사람일수록 이해할 수 없는 간격이 생긴다. 최수지의 시집 『짧은 쉼표 긴 이음줄』은 그 간격을 들여다본다. 이 시집의 시들은 관계가 만들어내는 따뜻함과 쓸쓸함, 이해와 오해가 뒤섞인 삶의 내밀한 표정을 일상의 사물과 경험 속에서 포착한다.
이를테면 「끈」에는 “눈을/귀를/동작을/기억을/생각을 서서히 멈추게 하는” 사람을 곁에서 지켜보는 화자가 등장한다. 한때 자신을 지탱해 주었을 사람이 이제는 “일으켜 세워야 하는 길어진 날”이 되었고, 화자에게는 그를 돌보아야 할 “내 몫”이 생겼다. 여기서 관계는 단순한 정서적 유대에 머물지 않는다. 상대의 몸을 일으켜 세우고, 느려지는 시간을 함께 견디며, 무너지는 기억의 자리를 대신 지켜주는 구체적인 행위가 된다. 시인은 이 무거운 현실을 비장하게 과장하지는 않는다. “참 이상하고/이상한 일이야”라는 담담한 말 속에 생의 역할이 뒤바뀌는 순간의 당혹감과 애틋함을 함께 담는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완전한 이해에 이를 수는 없다. 「온도 기울다」에서 화자와 상대는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세계에 놓여 있다. “안은 25도//바깥은 40도/그와 나의 간극은?”이라는 물음은 기온의 차이를 넘어 두 존재 사이의 심리적 거리를 드러낸다. 「고쳐 쓰다」에서도 함께 떠나려던 계획은 병과 시간 앞에서 수정된다. “우리는 그곳에 갈 수 없다”는 문장은 단념의 기록이면서도 함께 살아가기 위해 삶의 문장을 다시 쓰는 고백이다. 최수지 시인의 시에서 관계는 완성된 합일이기보다 어긋남을 받아들이고 그 어긋남 속에서 동행의 방식을 찾아가는 일이다.
이러한 관계의 사유는 가족과 부부를 넘어 낯선 사람에게로 확장된다. 「올리브나무를 멀리서 보다」에서 아버지를 잃은 한 사내가 오래된 올리브나무 곁에서 운다. 화자도 그를 따라 운다. “그는 나를 더욱더 모르는데”도 눈물은 이미 두 사람 사이를 건너간다. 삼십 년 전 아버지를 잃은 화자와 얼마 전 아버지를 여읜 사내는 서로의 사정을 알지 못하지만, 상실의 감각으로 잠시 연결된다. 관계는 오랜 친분에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타인의 슬픔에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 낯선 존재들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통로가 열린다.
최수지 시인의 언어에는 일상의 구어와 사투리, 혼잣말과 질문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다. 문장은 느리게 머뭇거리다가 돌연 엉뚱한 방향으로 뻗어나가고, 웃음과 울음이 한 장면 안에서 교차한다. 이러한 어법은 관계의 실제 모습과 닮았다. 사람의 마음은 논리정연하게 이어지지 않으며, 사랑과 원망, 연민과 피로도 좀처럼 분리되지 않는다. 시인은 그 복잡함을 정돈해버리지 않고 쉼표와 여백, 질문과 말줄임 속에 그대로 남겨둔다.
「부르면 대답할 아침이 있어」에서 화자는 “신이여/AI여/이웃이여”라고 부른다. 그 부름에 강아지와 고양이와 나무 그늘까지 조용히 응답한다. 누군가를 부르고 그 부름에 대답하는 일, 그의 시가 보여주는 관계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곁을 내어주고, 자주 엇갈리면서도 손을 놓지 않는 것이다. 『짧은 쉼표 긴 이음줄』은 삶의 의미가 거창한 깨달음보다 서로의 불편한 보폭을 맞추는 일에서 생겨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짧은 쉼표로 잠시 숨을 고르면서도 끝내 긴 이음줄을 놓지 않는 마음, 그것이 이 시집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관계의 소중함이다.

목차

1부 노란색 다분하게 꽃으로 일렁이고

새와 나무와 나/ 끈/ 편집 중입니다/ 네가 물고 온 꽃씨/ 사과 세 개/ 불량한 날/ 더듬어 찾기/ 또 웃는/ 고물 딸딸이/ 가족관계와 서툰 관계식/ 가끔인 듯 자주/ 폭탄 계란찜/ 조금만 기다리라고/ 그래도 짜장면/ 봄, 쪽파/ 질문에 대한 좋은 답을 기대하며

2부 기억나나요 어제 그제의 질문이

올리브나무를 멀리서 보다/ 인제 그만 갠지스강으로 가야겠네/ 꽃달/ 이상한 날/ 은행나무 옮기기/ 열린 귀/ 야행에 손잡다/ 그날들/ 비워둘 공간에 머무는 것들/ 비린내 나는 혼잣말/
부르면 대답할 아침이 있어/ 바퀴 구르다/ 뭐 하는 짓이여/ 이름/ 묵호에 가면/ 온도 기울다

3부 먼먼 별들이 모여 달 하나 부풀리는

섬망/ 무딘 칼을 꺼내다/ 달동네/ 매미 울음의 무게/ 너희는 다년생이기를/ 명품/
고쳐 쓰다/ 단단한 위안/ 너를 부르며 눈을 닦다/ 멍때리는 고지서/ 나를 데리고 가는 너/
당신이 행복하면 참 좋겠습니다/ 다시 한계령에서/ 사진 한 장의 담소/ 빗방울 물 위에/
쓸쓸함에 대하여

4부 입안에 굴리는 달

없다, 있다./ 오늘은 봉자 언니 풍으로/ 무겁거나 가볍거나/ 마음 치기/ 그래도 남아 있는/아끼던 말/ 다시 묻는 바람/ 그동안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책을 부쳤다는 기별/ 12월 24일 화요일 곧 12시/
우리는 같이 허기진다/ 물먹는 집/ 어머님 그래도 미역국은 챙겼습니다/ 끼였다/ 운수 좋은 날/ 생뚱맞은 옷 한 벌

해설 _ 시의 여백에 접어둔 소중한 것들 133
마경덕(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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