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경매, 갭투자, 전세사기, 상속…… 재테크와 투기를 가로지르는 ‘꾼’들의 조용한 활극! 부동산을 향한 욕망을 해부하는 10편의 단편소설
윤보인 소설집 『압구정 현대를 사지 못해서』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압구정 현대를 사지 못해서』는 부동산과 자본주의 욕망을 축으로 돈에서 밀려난 자들의 생존 감각을 건조하고 직설적인 문체로 포착한 테마 소설집이다. 파산·횡령·도박·사기 등 경제적 패배를 겪은 인물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욕망을 재구성하는 과정을 풍자적이면서도 능청스러운 시선으로 따라간다.
윤보인은 2007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한 이래 소설집 『뱀』, 장편소설 『밤의 고아』, 『재령』을 펴내며 인간 내면에 도사린 원초적 욕망과 운명의 어두운 결을 서늘하고 기이한 시선으로 탐구해 왔다. 사주명리를 바탕으로 한 인간의 운명을 추적했던 『재령』의 관심은 이번 소설집에서 역술인 ‘만춘’의 시선으로 이어지고, 욕망에 대한 오랜 탐구는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가장 노골적인 욕망의 대상인 부동산으로 향한다.
줄거리
「부동산은 끝났다는 그 말 - 동부이촌동」 파산한 후 강남 회사에 취직한 ‘나’가 경매 수업을 듣고 부동산 시장 주변을 맴돈다. 롤스로이스를 보며 욕망을 키우고 사기꾼들 틈에서 경매 임장을 다니며 죽은 지인을 떠올리면서도 “파산에서 성공으로” 삶의 판도를 바꾸겠다는 의지를 다진다. 패배를 인정하면서도 욕망의 끈을 놓는 법은 없다.
「압구정 현대를 사지 못해서」 역삼동 월세에 살며 여러 채의 아파트를 갭투자로 보유하고 있는 ‘나’가 전 여자친구의 아들과 압구정을 걷는다. 끝내 사지 못한 압구정 현대 아파트 단지를 지나며 ‘나’는 청년에게 돈과 자본주의의 논리를 거침없이 설파하고, 강남 한복판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뻔뻔함으로 무장해 살아보겠다”는 선언을 능청스럽게 내놓는다.
「한남 3구역」 도박으로 회사 돈을 횡령하고 교도소를 다녀온 여성 화자가 출소 후 한남동 부동산을 기웃거린다. 교도소 생활과 강원랜드 카지노의 기억이 교차하는 가운데 한남 재개발 지역이 펼쳐 보이는 부의 풍경과 자신의 삶이 완전히 다른 세계임을 직시한다.
「아름다운 건축물이 아니어도」 파주에 빌라를 지었다가 금리 상승으로 분양이 막혀 자금난에 빠진 ‘나’가 투자자 박 사장, 한의사 등과 술을 마시며 현실을 버틴다. 역술가 백화 선생의 경고를 무시한 결과가 파국으로 이어지지만 다시 새 주인을 찾아 재건하겠다는 ‘극성스러운 욕망’을 되찾는다.
「경마장에서 봉순이를 만나면」 경마장을 근거지 삼아 살아가는 ‘나’가 탈북 여성 봉순이를 만나 돈과 삶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봉순이에게 돈을 줘야 하는 상황과 경마에 베팅하고 싶은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는가 하면, 북한 출신 여성의 삶과 남한 사회의 격차가 경마장이라는 공간에서 아이러니하게 포개진다.
「연변에서 만나 샤넬 백을 줬을 뿐」 연차를 내고 연변 연길로 간 ‘나’가 오래전 헤어진 혈연 관계의 종희와 재회한다. 샤넬 백을 선물로 건네고 오랜 시간의 공백과 혈연의 의미를 이야기하다 차 안에서 울음을 터트린다. 이산과 혈연, 돈과 감정 사이의 긴장이 느슨한 대화 속에 날을 숨기고 있다.
「단둥에서 테헤란로까지」 중국 단둥으로 조선족 여성 향은을 만나러 간 ‘나’가 기차 안 변태를 피하고 식당 직원을 매수해 향은과 재회한다. 향은을 중국에서 빼내겠다는 결심을 하고 귀국한 뒤 다시 단둥으로 향하는데…… 국경 도시의 풍경과 월경의 욕망, 서울(테헤란로)과의 대비가 돋보이는 작품.
「삿포로의 바에서 재즈를」 탈북 후 남한에서 생활하다 삿포로에서 작은 바를 운영하는 방윤을 찾아간 여성 화자가 재즈를 들으며 그와 과거를 추억한다. 탈북 경험, 성형 투자, 남한 정착의 고단함 뒤로 국경 넘어 도달한 삿포로에서의 아련한 감각이 독특한 정조를 형성한다.
「서울을 사랑하면서 경멸하는」 거제도 부동산 중개인 ‘나’가 신혼부부 전세 계약 문제로 시비가 붙은 60대 여성을 상대하고 각종 진상 손님과 사기 브로커들 사이를 헤치며 살아간다. 거제를 무대로 한 거래와 수치, 남루한 욕망의 축적을 담담하게 기록하며 가덕도 신공항과 통영으로까지 시선을 넓힌다.
「만춘」 ‘만춘 지백룡’이라는 이름의 58세 역술인이 각계각층 손님들의 사주를 보면서 인생의 명암을 관조한다. 사주의 여덟 글자를 통해 삶의 파격과 굴곡을 읽어 내는 만춘의 시선을 중심으로 운명론적 세계관 속에서 삶의 역전과 체념을 다룬다.
목차
부동산은 끝났다는 그 말-동부이촌동 7쪽 압구정 현대를 사지 못해서 43쪽 한남 3구역 85쪽 아름다운 건축물이 아니어도 107쪽 경마장에서 봉순이를 만나면 137쪽 연변에서 만나 샤넬 백을 줬을 뿐 183쪽 단둥에서 테헤란로까지 229쪽 삿포로의 바에서 재즈를 271쪽 서울을 사랑하면서 경멸하는 307쪽 만춘 339쪽